조은님과 강성진님의 포스트를 읽고 번역에 관한 회고를 간략하게나마 남긴다. 전문적으로 하는 번역은 아니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들인 일 중 하나였고, 그 결과로 올해 작성한 블로그 포스트 대부분이 번역글로 채워졌다. 원문의 길이도 다양했고 그 분야도 다양한 편이였는데 읽고 나서 유익하다 싶었던 글은 대부분 번역했던 것 같다.

올해 번역을 유독 많이 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올해 초에 썼던 목표대로 경험을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짧게라도 읽는 글을 정리한다는 느낌을 갖고 시작했다. 모국어로 사유를 확장할 수 있는 컨텐츠가 적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한국어 구사자는, 특히 개발자라면 최신 정보를 알기 위해 사소한 글이라도 영어를 읽어야만 하는 상황에 자연스레 놓이게 된다. 그래서 내가 사소하게 읽는 글이라도 간단하게 국문으로 옮겨두면 나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이 글이 필요한 다른 사람도 도움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호주에서 지내며 영어 공부한다는 핑계로, 그리고 한국어로 긴 글을 별로 쓸 일이 없어 문장이 많이 서툴어지고 있던 점도 있어서 겸사겸사 번역에 시간을 쓰게 되었다. 영어도, 한국어도 잘 못하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시작했다.

몇 번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짧은 글이였다. 처음엔 짧은 글도 번역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비슷한 표현도 많이 나오고, 내용도 쉬운 글을 위주로 번역했기 때문에 점점 번역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드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짧은 글은 지치지 않고 끝낼 수 있어 자연스럽게 성취감과 자신감도 따라왔다. 공유에 따라 피드백도 바로바로 받을 수 있어서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동력이 되었다.

명세와 같이 중요한 문서나 깊은 통찰이 있는 글을 번역하는 일은 분명 멋진 작업이지만 별로 많이 하지 못했다. 아직 분량이 많아지면 겁이 나기도 하고 “공식적인” 느낌의 글을 옮기는 것은 묘하게 부담이 느껴진다. 그래도 짧은 글에서 점점 긴 글로,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는 글을 번역해 점점 근육을 키워가는 것을 목표로 했고, 예전에 비해 글을 번역해야지 하는데 고민이 많이 줄었다는 점 등 그 목표를 잘 따른 한 해라고 생각한다.

좋은 번역이었나에 대해서는 답을 하기 어렵다. 시간을 들여 좋은 품질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그냥 글을 읽는 것처럼 번역해 그 시간을 줄이는 것을 더 고려했었다. 또한 직역보다는 내가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의역을 많이 했다. 용어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지나친 초월 번역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고 트위터나 슬랙을 통해서 물어봤고, 또 그런 과정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내년엔 필요할 때만 물어서 용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용어집을 만들어 정리하고 번역 원칙에 따르는 것도 꼭 해봐야겠다. 또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영어나 한국어나 실력이 평범한 수준이라 아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내년에는 번역의 질이 높아질 수 있도록 시간도 충분히 투자하고, 또한 영어, 한국어 수준이 높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가장 철저하게 따른 원칙은 저작권 준수다. 저작권이 명시되어 있다면 저작권에 따라 병기했고 따로 명시되지 않았다면 꼭 저자에게 메일로 문의해 명확한 허락을 받고 번역, 게시했다. 단 한 번도 이 원칙을 따르지 않은 경우가 없었는데 단 한 명도 안된다고 이야기 한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고맙다는 피드백도 받을 수 있었다. 메일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도 저자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콜드 메일을 보내는데 자신감도 생겼다.

내가 맨 처음 번역글을 작성할 때 찾았던 초보 번역자들에게 보내는 몇 가지 조언은 매번 번역에 어려움이 있거나 지침이 필요할 때, 거친 얘기를 들어서(번역이 왜 이렇게 구리냐, 이런 유치한 것도 번역하냐 등등) 마음이 힘들 때마다 꺼내 읽는 글이다. 특히 비웃는 자를 비웃어 주라는 이야기가 특히 힘이 되었다. 😀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새해 목표 목록에 번역하기를 추가한다면 참 기분 좋을 것 같다. 내년에도 좋은 글 많이 마주하고 번역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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